안양군 세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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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양군(安陽君) 행장(行狀)

     

    諱는 순(恂)이요, 字는 신부(信夫)이며 號는 강수(江叟)이다.

    1428년(세종 무신)에 출생하였으니 천품(天稟)이 영오(穎悟)하고 논의(論議)가 강직(慷直)하며 일찍이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제천(堤川) 안의현감(安義縣監)을 역임(歷任)하였고 청백리(淸白吏)에 녹권(錄券)되었으며 선정비(善政碑)가 세워져 있다. 통훈대부(通訓大夫)의 품계(品階)를 받았다. 

    단종(端宗) 세조선수지제(世祖禪受之際)에 누차(累次) 사육신(死六臣)의 충의(忠義)를 상소(上疏)하여 힘써 간(諫)하다가 오상지(忤上旨)하니 의주(義州)로 귀양가서 피화(被禍)되었다. 이러한 사실이 사화록(士禍錄)에 기록(記錄)되어 있다. 

    1698년(숙종 무인)에 신설복관(伸雪復官)되었고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증직(贈職)되었다. 

    1872년(고종 임신)에 안양군(安陽君)에 추봉(追封)되고 지종정경(知宗正卿)하였다.

     

    묘는 금릉(金陵) 선영(先塋)아래요 소호사(蘇湖祠)에서 배향(配享)한다.

     

    배위는 현부인창녕성씨(縣夫人昌寧成氏)이니 父는 화욱(和旭)이며 묘는 합폄(合窆)하였다.

     

    ▶ 안양군설단내력(安陽君設壇來歷)

     

    군(君)의 묘(墓)가 갑자보(甲子譜)에는 금릉(金陵) 선영(先塋)아래라 하였고 경자보(庚子譜)에는 아산(牙山) 백암(白岩) 임좌(壬坐)로 비석(碣)이 있다라고 되어 있으나 사실상(事實上) 근거(根據)가 전혀 없다. 

    수년(數年)동안 누차(累次)에 걸쳐 현지(現地)를 답사(踏査)하며 수소문(搜所聞)하였으나 모두 허사(虛事)였다. 궐향(闕享)한지 오래인지라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갑인년 봄에 영호종인(嶺湖宗人)들이 난상토의(爛商討議) 끝에 성재리(聖才里)에 설단향사(設壇享祀)하고 공(公)의 아들인 참판공(叅判公) 영근(榮根), 사직공(司直公) 은근(恩根), 목사공(牧使公) 덕근(德根)등 삼형제(三兄弟)도 고단하(考壇下)에 설단병사(設壇幷祀)하고 있다.

     

    모시는곳 : 소호사(전남 영암군 서호면 성재리 선산)

    향 사 일 : 매년 양력3월31일

    운 영 : 소호사 보존회


        《조직도》

    회 장 : 돈모(19세)

    사무총장 : 해균(2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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