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世 경릉군(慶陵君) 휘 수의(守義) 행장(行狀)

     

    제 4세 경릉군 휘 수의(守義)는 밀은군의 제 4남으로 시조 司空公의 24세이며, 파조 완창대군의 4세손이다. 공의 휘는 守義 이시니 바로 우리 순양군의 생부(生父) 이시다. 공은 1403년(태종3년 계미)에 태어나셨으며 일찍부터 문간공(文簡公) 김종직(金宗直) 에게 글을 배워 문과에 급제하여 목사(牧使) 역임 하셨다.

     

    사육신(死六臣) 묘에 배알(拜謁) 할 때 詩를 지으니 가로대 일배경뢰육령신(一杯敬酹六靈神)하니 일월당당대의신(日月堂堂大義神)이라 지한차신(只恨此身)이 유미조(猶未早)하여 당년구절반거인(堂年九折返車人)이라하고 또 가로대 천지상심객(天地傷心客)이요 남호(南湖)에 체백빈(採白蘋)이라 정령(精靈)을 초불득(招不得)하니 독립고강빈(獨立苦江濱)이라 하다.

     

    누차 조정의 부름을 받으나 모두 사양하고 시골에 내려와 초야에 묻혀 살으셨다. 1872년(고종9 임신)에 경릉군에 추봉(追封)하고 지종정경(知宗正卿)하다.

    1468년(세조 13 무자)에 돌아가시니 공의 墓는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사전동에 壬坐이며, 配位는 현부인(縣夫人) 해남김씨(海南金氏)로 父는 進士 길(吉)의 따님이다 生. 卒. 년대는 未詳이며 墓는 경릉군과 합폄(合窆)이다.

    공은 슬하에 5남을 두셨으니 제1남 휘 석공(石공)은 파성군 휘 사철의 계자로 출계하셨고, 제2남은 진풍군(晉豊君) 휘 석중(石中)이며, 제3남 진봉군과 제4남 진선군 제5남 진령군은 무후(无后)이다.

    TOP
    전체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