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世 - 영성대군(永城大君) 휘 천계(天桂)

     

    행장(行狀)

     

    제2세 영성대군의 휘는 천계요.

    字는 순음(順飮) 또는 중선(仲仙)이며, 號는 石川, 시호(諡號)는 효민공(孝愍公)으로 환조대왕의 제1남이며, 완창대군의 계자(繼子)이다. 1333년(고려 충숙왕 20년 계유)에 의혜왕후(懿惠王后) 永興崔氏로부터 영흥 흑석리에서 출생하여 백부(伯父) 자헌대부 병조판서 封 완창대군 정간공휘 자흥(子興)의 계자(繼子) 즉 양자(養子)로 출계했다.

     

    공은 천성이 지극히 효도로 왔으며 학문이 뛰어났고 성리학(性理學)에 깊으셨다.

    정포은, 길야은 두 선생과 도의지교가 있어 경리와 성리를 강론하며 왕복 창수 하였으니 학문과 덕망이 당대의 표본이 되었다.고려 때 벼슬이 추밀(樞密)에 이르고 반란을 평정하여 공을 세움으로서 완성군(完城君)에 봉(封) 하였다.

     

    1392년 태조대왕 즉위 원년에 돌아가시니 성안백성들이 가계문을 닫고 유덕을 추모하며 애도 하였고. 태조대왕도 심히 슬퍼하시어 어린 조카들을 어루만져 기르고 살림살이를 후히 도와주었으며 좌찬성을 증(贈)하고 부조묘(不祧廟)를 특명하고 제비(祭費)를 하사 하시어 춘추로 행사하게 하였다.

     

    1871년 고종 辛未 36월 9일에 효민공(孝愍公)을 증시(贈諡)하고 익년 壬申 12월 4일에 영성대군(永城大君)으로 추봉(追封) 하고 영종정경(領宗正卿) 했다.

    配位는 부부인(府夫人) 밀양 박씨로 판부사 종건(宗健)의 따님으로 1332년 고려 충혜왕 壬申에 출생하여 1397년(태조 丁丑)에 돌아가셨다.

     

    공의 묘는 함흥부 동쪽으로 15리 떨어진 雲田社(병인보에는 함흥주 東社) 축전동 子坐原에 있고. 配位 朴氏의 묘는 함흥주 北社 후주리(厚住里) 가마동(駕馬洞) 子坐에 있다. 공이 슬하에 5남 2녀를 두시니 밀양군 휘 란(蘭), 밀은군 휘 섭(攝), 밀춘군 휘 척(陟), 밀릉군 휘 실(實), 밀선군 휘 종(種)이고, 사위는 판서 최천보, 참판 최천봉이다.

     

     

    1. 영성대군 행장 및 신도비(永城大君 神道碑)

     

    --- 영성대군 비음기 ---

     

     

    公의 諱는 天桂요 字는 順欽 號는 石川이며 諡號는 孝愍이다. 系出全州하니 度祖大王 之孫

    공    휘    천계   자    순흠  호   석천      시호    효민       계출전주     도조대왕 지손이며

    資憲大夫 兵曹判書 封 完昌大君 貞簡公 諱 子興之 繼子이니 卽 桓祖大王之長子也라

    자헌대부 병조판서 봉 완창대군 정간공 휘 자흥지 계자      즉  환조대왕지장자야

    延祐癸酉高麗忠肅王二十年에 懿惠王后永興崔氏誕生于永興黑石里하다 貞簡公이 卒而無嗣

    연우계유고려충숙왕이십년   의혜왕후영흥최씨 탄생우영흥흑석리      정간공    졸이무사 하니

    桓祖 特命承祀하다 妣는 府夫人漢陽趙氏로 左賓客淑의女이니 早卒하고 繼妣는 府夫人

    환조 특명승사      비     부부인한양조씨    좌빈객숙  여      조졸      계비    부부인

    靑海李氏也라 公이 天性이 純孝하여 定省之誠과 居哀之節를 極循古禮하고 尤深於 性理之學할세

    청해이씨야    공   천성    순효      정성지성    거애지절    극순고례      우심어  성리지학

    與文忠公 圃隱과 吉文節公 冶隱 兩先生으로 爲道義之交하여 談論經理하고 徃復唱酬하니

    여문충공  포은   길문절공 야은 양선생      위도의지교      담논경리       왕복창수

    德望學業이 爲世所推하다 仕於麗朝하여 官至樞密하고 撥亂建功으로 封完城君하다 洪武

    덕망학업    위세소추      사어려조       관지추밀     발란건공       봉완성군      홍무

    壬申에 卒하니 都城人民이 爲之撤市하고 追思遺德하며 太祖大王이 悲悼不已하사 撫育諸孤하고

    임신    졸      도성인민    위지철시       추사유덕      태조대왕    비도불이     무육제고

    優恤家廩하다 贈左贊成하고 特命不祧하고 賜祭牌하여 春秋享祀하다 墓는 咸興府東十五里

    우휼가름       증좌찬성      특명불조      사제패       춘추향사      묘    함흥부동십오리

    雲田社 杻田洞 子坐이다 府夫人은 密陽朴氏로 判府事宗健의女이다 延祐壬申生으로 性行이

    운전사 축전동 자좌      부부인    밀양박씨   판부사종건의 여      연우임신생      성행

    貞淑하고 閨範이 整齊하여 敎誨五子에 常勉忠孝二字하다 有五南二女하니 曰 蘭 攝 陟 實 種이오

    정숙       규범   정제       교회오자   상면충효이자       유오남이여      왈  난 섭 척 실 종

    女適判書 崔天寶와 參判崔天奉하다 諱蘭은 文科로 再歷翰注輔國崇祿大夫 吏曹判書하니

    여적판서 최천보    참판최천봉      휘난    문과    재역한주보국숭록대부  이조판서

    贈左議政하고 諡는 文莊이오 配는 貞敬夫人 坡平尹氏로 提學師愚의 女이다 生文科 濟州判官

    증좌의정       시    문장     배     정경부인  파평윤씨  제학사우의 여      생문과 제주판관

    贈 禮曹參議 陽德과 文科 判知事佐理功臣 左贊成 思明과 文科 三歷翰注 弘文館提學

    증 예조참의 양덕   문과  판지사좌리공신 좌찬성 사명   문과 삼역한주 홍문관제학

    大匡輔國 崇祿大夫 左議政 甄城府院君 諡 文安思哲하고 女는 縣監安緇니 子 安慶會는 察訪이오

    대광보국 숭록대부 좌의정 견성부원군 시 문안사철       여   현감안치    자  안경회   찰방

    女는 縣監柳潭이니 子 柳宗壕는 府使요 柳宗秀는 判尹이오 柳宗垓는 翰林이오 女는 參判成

    여    현감유담      자  유종호   부사    유종수    판윤      유종해    한림      여   참판성

    順祖니 子 成俶은 左議政이오 成俊은 領議政이요 成健은 吏判이다 諱 攝은 文科로 資憲大夫

    순조   자  성숙    좌의정     성준    영의정       성건    이판      휘  섭   문과   자헌대부

    工曹判書요 配는 貞敬夫人 長興魏氏이니 生 司直重慶과 參判重寶하고 繼配는 貞敬夫人

    공조판서    배   정경부인  장흥위씨      생  사직중경   참판중보      계배   정경부인

    慶州金氏이니 生 文科監司 原從功臣 守仁과 文科牧使 守義와 司直重芳하다 諱 陟은 資憲大

    경주김씨      생 문과감사 원종공신 수인    문과목사 수의    사직중방       휘 척   자헌대

    夫戶曹判書요 配 는 貞敬夫人 漢陽趙氏이니 生 夏生 進士夏成과 進士夏雲과 夏恭과 司正夏秀와

    부호조판서    배    정경부인 한양조씨       생 하생 진사하성    진사하운    하공   사정하수

    判官熙文하고 諱 實은 大護軍이요 配는 淑人淸風金氏이니 生 判事得成과 參奉守成하다

    판관희문      휘  실   대호군      배     숙인청풍김씨     생   판서득성   참봉수성

    諱 種은 府使요 配는 淑人 韓山李氏이니 生 判官陽秀하다 內外子孫이 蕃烜키로 曾玄以下는

    휘 종    부사   배    숙인 한산이씨      생  판관양수      내외자손    번훤      증현이하

    不能盡錄한다 嗚呼라 公의 衣履之藏이 在於咸興杻田洞이 歲久失傳而 公의 外彌孫 韓亨允이

    불능진록      오호    공    의이지장   재어함흥축전동이  세구실전이  공  외미손  한형윤

    觀察北道할 때 殫誠採詢하여 竟得其墓하여 竪碑鐫銘而 今距嘉靖辛卯 亦過三百載하니 字劃이

    관찰북도       탄성채순      경득기묘       수비전명이   금거가정신묘 역과삼백재    자획

    磨漶하여 不能卞讀이라 十三代孫 燾與炡등이 將改樹石神道하여 移刻舊銘하니 後復磨漶而

    마환       불능변독      십삼대손 도여정       장개수석신도     이각구명        후부말한이

    又有移刻을 如今日則 可保不朽於無窮矣리니 此其諸孫今日之心也라 公之行蹟은 已有韓公之

    우유이각   여금일칙   가보불후어무궁의      차기제손금일지심야   공지행적    이유한공지

    備述이 質慤簡重하여 無有浮華하니 其足徵無疑矣요 且其後承이 蕃衍하여 殆過累千에 不能盡錄

    비술이 질각간중       무유부화      기족징무의의   차기후승    번연       태과누천    불능진록하니

    以川豊源羨之理로 推之컨대 公之隱德陰功이 積於躬而發於後者를 可見矣로다 今李君등이

    이천풍원선지리    추지      공지은덕음공    적어궁이발어후자    가견의       금아군

    從余甚熟할세 令余以此見屬하니 余不敢辭而 追叙如此云하노라 銘曰 惟公德性은 府使요

    종여심숙      영여이차견속       여불감사이  추서여차운       명왈   유공덕성   부사

    成俊은 領議政이요 成健은 吏判이다 諱 攝은 文科로 資憲大夫工曹判書요 配는 貞敬夫人

    성준    영의정     성건    이판       휘 섭    문과   자헌대부공조판서    배   정경부인

    長興魏氏이니 生 司直重慶과 參判重寶하고 繼配는 貞敬夫人 慶州金氏이니 生 文科監司

    장흥위씨      생  사직중경   참판중보       계배   정경부인  경주김씨     생  문과감사

    原從功臣 守仁과 文科牧使 守義와 司直重芳하다 諱 陟은 資憲大夫戶曹判書요 配 는 貞敬

    원종공신 수인    문과목사 수의   사직중방       휘 척    자헌대부호조판서    배    정경

    夫人 漢陽趙氏이니 生 夏生 進士夏成과 進士夏雲과 夏恭과 司正夏秀와 判官熙文하고 諱

    부인 한양조씨      생  하생 진사하성   진사하운    하공     사정하수   판관희문      휘

    實은 大護軍이요 配는 淑人淸風金氏이니 生 判事得成과 參奉守成하다 諱 種은 府使요

    실     대호군     배     숙인청풍김씨     생  판서득성   참봉수성       휘  종  부사

    配는 淑人 韓山李氏이니 生 判官陽秀하다 內外子孫이 蕃烜키로 曾玄以下는 不能盡錄한다

    배    숙인 한산이씨      생  판관양수      내외자손   번훤       증현이하    불능진록

    嗚呼라 公의 衣履之藏이 在於咸興杻田洞이 歲久失傳而 公의 外彌孫 韓亨允이 觀察北道할 때

    오호    공   의이지장    재어함흥축전동이 세구실전이 공     외미손  한형윤  관찰북도

    殫誠採詢하여 竟得其墓하여 竪碑鐫銘而 今距嘉靖辛卯 亦過三百載하니 字劃이 磨漶하여

    탄성채순      경득기묘      수비전명이  금거가정신묘 역과삼백재       자획   마환

    不能卞讀이라 十三代孫 燾與炡등이 將改樹石神道하여 移刻舊銘하니 後復磨漶而 又有移刻을

    불능변독       십삼대손 도여정      장개수석신도      이각구명       후부말한이 우유이각

    如今日則 可保不朽於無窮矣리니 此其諸孫今日之心也라 公之行蹟은 已有韓公之備述이 質慤

    여금일칙 가보불후어무궁의       차기제손금일지심야    공지행적   이유한공지 비술이 질각

    簡重하여 無有浮華하니 其足徵無疑矣요 且其後承이 蕃衍하여 殆過累千에 不能盡錄하니

    간중       무유부화       기족징무의의   차기후승   번연      태과누천    불능진록

    以川豊源羨之理로 推之컨대 公之隱德陰功이 積於躬而發於後者를 可見矣로다 今李君등이

    이천풍원선지리   추지       공지은덕음공    적어궁이발어후자    가견의      금아군

    從余甚熟할세 令余以此見屬하니 余不敢辭而 追叙如此云하노라 銘曰 惟公德性은 沛鄕猗蹟이요

    종여심숙       영여이차견속     여불감사이 추서여차운          명왈  유공덕성   패향의적

    兩賢道源이오 鐫劃磨漶하니 惟公休德이 在昔粹精이로다 韓公舊銘이로다 百世宗英이로다

    양현도원       전획마한      유공휴덕    재석수정         한공구명        백세종영

    裔諴繼成이로다 積久斯明이로다 刻于表章하여 庶壽俾亨이로다

    예함계성         적구사명         각우표장      서수비형

    崇禎記元 後 二百二十一年 乙丑 仲秋

    숭정기원 후 이백이십일년 을축 중추

    資憲大夫 工曹判書 兼 知義禁府事 成均館 祭酒 經筵官 恩津 宋來熙 謹記

    자헌대부 공조판서 겸 지의금부사 성균관 제주 경연관 은진 송래희 근기

     

     

     

    --- 해   역 ---

     

    공의 휘는 천계 자는 순흠 호는 석천 시호는 효민공이요. 전주에서 계출되니 도조대왕의 손자이며 자헌대부 증 병조판서 봉 완창대군 정간공 휘 자흥의 계자이니 즉 환조대왕의 큰 아들이다.

     

    고려 충숙왕 20년에 의혜왕후 영흥 최씨로부터 영흥 흑석리에서 탄생하셨다.

    정간공이 돌아가심에 후사가 없으니 환조께서 특명으로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비위는 부부인 한양 조씨로 좌빈객 숙의 따님이며 계비는 청해 이씨이다. 공의 천성이 지극히 효도로 왔으며, 학문이 뛰어나고 더욱 성리학에 깊으셨다 정포은, 길야은 두 선생과 도의지교가 있어 경의와 성리를 강론하며 왕복 창수 하였으니 학문과 덕망이 당대의 표본이었다.

     

    고려 때 벼슬이 추밀에 이르고 난을 평정하여 공을 세움으로써 완성군에 봉하였다. 홍무 임신년 태조대왕 즉위 원년에 돌아가시니 성안 백성들이 가계문을 닫고 유덕을 추모하며 애도 하였다.

    태조대왕도 여시 심히 슬퍼 하시여 어린 조카들을 어루만져 기르고 살림살이를 후의 도와주었으며 좌찬성을 증직하고 부조묘(不祧廟)를 특명하고 제폐를 하사 하시어 춘추로 향사케 하였다.

     

    묘는 함흥부 동쪽으로 15리 되는 운전사 축전동 자좌원에 계시며, 배위는 부부인 밀양 박씨로 판부사 종건의 따님이다. 품성이 현숙하고 부덕을 겸비하여 5남을 교육하되 충효 두字를 강조 하였다.

    5남 2녀를 두시니 난(蘭), 섭(攝), 척(陟), 실(實), 종(種)이며 사위는 판서 최천보, 참판 최천봉이다. 난(蘭)은 문과로 한주보국 숭록대부 이조판서를 좌의정을 증직하고 증시(贈諡)는 문장공 하고 配는 정경부인 파평윤씨로 제학 사우의 따님이다.

     

    문과로 제주판관 양덕과 문과로 판지사 좌리공신 죄찬성인 사명(思明)과 문과로 홍문관 제학 대광보국 숭록대부 좌의정 견성부원군 문안공 사철(思哲)을 낳으시고 사위는 현감 안치 현감 유담, 참판 성순조이다.

    섭(攝)은 문과로 자헌대부 병조판서요, 配는 정경부인 장흥 위씨로 사직 중경(重卿)을 낳으시다. 척(陟)은 자헌대부 호조판서요 配位 정경부인 한양 조씨로 하생(夏生), 진사 하운(夏雲), 하공(夏恭), 사정 하수(夏秀), 판관 희문(熙文)을 낳으시다. 실(實)은 대호군이요 配는 숙인 청풍김씨로 판사 득성(得成), 참봉 수성(守成)을 낳으시다 ‘종(種)은 부사요.

     

    配는 숙인 한산 이씨로 판관 양수(陽秀)를 낳으시니 내외 자손이 번성키로 증. 현손 이하는 기록 차 아니한다.공의 분묘가 함흥 축전동에 있었으나 해가 오래되어 실전 되었더니 외 현손인 한형윤이 함흥 관찰사로 부임하여 정성껏 탐지하고 문의하여 마침내 분묘를 찾아 빗돌을 세우고 사적을 기록 하였으나 이로부터 2백년이 지나 풍마우습으로 글자를 거의 분간할 수 없을세 13대손 도(燾)와 정(炡) 등이 장차 빗돌을 개수하여 옛적 비문을 옮겨 새기려하니 후일에 또다시 빗돌이 풍마우습 되어 또 옮겨 세우기를 오늘날 같이 한다면 가히 영원히 불후 하리니 이것이 오늘날 모든 후손들의 심정이리라 공의 행적은 이미 한형윤 공의 기록이 진실하고 간략하여 가식된 점이 하나도 없으니 족히 증빙 하겠으며 또 그 후손들이 번창하여 팔도에 분포되어 있으니,

     

    풍부한 시냇물은 근원이 길다는 이치로 미루어 보건데 공의 몸에 쌓인 음덕으로 후손이 발복됨을 가히 보리로다. 이군 등이 나를 종유한지 오래됨으로 그의 간청을 사양치 못하였도다. 비명을 지으니, “이르기를 오직 공의 덕성이여 옛적부터 정수 하였도다 패향의 유적이 아름다우며, 한공의 옛글이 역력하여라 도학은 포은, 야은 두 선행의 영원이며, 백세토록 종속이 모범하리. 빗돌글씨 갈리우니 후손이 정성 모아 개수 하였네

    오직 공의 아름다운 학덕이여 오랜만에 비로소 천명 되었도다 표방하여 빗돌에 새겼으니 영원히 불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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