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이씨 시조(始祖)

     

    우리 전주이씨의 시조는 신라 때 사공 벼슬을 하신 휘 한(翰)이시다.

    사공이란 직책은 토지개척과, 치민, 치정에 관계되는 것으로써 신라 삼공의 하나이며 조선조 때 삼정승의 하나이다.

    공께서는 총명이 뛰어나시고 재질이 특이 하시어 하나를 물으면 열을 답했다 한다. 문장이 비범하고 도덕이 탁월하시어 그 인품이 크게 떨쳐 신라 문성왕이 사공 벼슬을 주었는데 치민(治民)한지 1년 남짓해서 국정이 공평하여 요순우탕대(堯舜禹湯代)를 구가했다. 그래서 신라 태종의 10대손 군윤 김은의 공이 자기의 금지옥엽 같은 딸과 혼인을 시키니 이로써 자손이 계계승승하여 지금의 우리 400여만 이라는 거족을 이룬 것이다.

     

    우리 시조공의 활동 시기는 신라 문성왕(文聖王) 시절이다.

    문성왕은 신라 제46대 왕으로 839~856년까지 17년간 재위에 계셨다. 지금으로부터 약 1300여 년 전이다. 이때는 해상왕 청해진 대사 장보고(張保皐)가 활동하든 시기로 통일신라가 그 전성기를 넘어 점점 쇠락의 조짐을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니 841년에 홍필(弘弼) 반란, 846년 장보고의 반란, 847년 양순(良順)의 반란, 849년 김식(金式)의 모반이 일어나는 등 어지러운 시기였다.

     

    공의 묘는 국조선원보약에 의하면 시조의 산소가 실전되어 고종 광무31년(1899년)에 묘소앞에 설단(設壇)하고 단호(壇號)를 조경(肇慶)이라 했다. 따라서 현재의 조경단 국내 어디에 가든 사공공 할아버지의 체혼(體魂)이 계시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태조 고황제께서 등극하신 후 특명으로 전주 건지산에 수호군을 두고 초목(樵牧: 나무하는 것과 가축을 방목하는 것)을 금하고 전주를 풍패지현(豊沛之縣: 선조가 탄생하신 발상지)이며 어향(御鄕)이라 해서 완산 유수부로 승격했다가 태종3년(1403년)에 다시 전주로 했다.

     

    공의 제향(祭享)은 조경단 대제와 조경묘 제향으로 모시는데 조경단 대제는 종약원 본원 주관하에 매년 양력 4월 10일에 봉행하고 조경묘 제향은 종약원 전주지원 주관하에 매년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경기 전 제향과 함께 봉행한다. 시조 휘 한(翰)의 행장에 관한 기록은 선원 선계, 완산실록, 조경단, 비음기 등에 기술되어 있다.

     

    〇 삼공(三公): 정승직으로 정1품의 최고 벼슬로 사관(司冠): 형정, 사도(司徒) : 문교, 사공(司空): 토지와 민사를 담당했든 벼슬을 말함

    〇 풍패지현(풍패지현): 선조가 탄생하신 발상지

    〇 국조선원보약(國朝璿源普略): 왕실의 世譜로 숙종때 처음 나오고 1897년 개정판을 간행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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